세종시 원안의 폐기 시도는 비정상적 발상과 인식의 소산
세종시 원안의 폐기 시도는 비정상적 발상과 인식의 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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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0.2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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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문제가 온 사회를 또 한 번 분열과 대결의 장으로 몰아넣고 있다. 정운찬 총리가 총리 후보로 내정된 직후 세종시 수정론을 밝히는 것을 신호탄으로 하여 전사회가 보혁 대결로 몰아가는 양상을 거치더니 이제는 아예 원안 폐기에 가까운 대통령의 의중이 언론을 통하여 흘러나오고 있다. 세종시 수정안의 요지를 임동규의원이 국회에 제출할 예정으로 있는 <세종시법 개정안>과, 지난 20일 93명의 사회인사들이 기자회견의 자리를 빌어 발표한 <세종시 행정기관 이전반대>성명서의 주장들, 대통령 측근들의 발언을 통해 드러난 대통령의 의중은 다음과 같다.

충정권에 과학단지나 산업단지를 세워주어 몇 십 년 먹고 살게 해주자는 것.
9부2처2청을 세종시로 옮기면 국회보고 등을 위해 서울을 오가는데 시간을 낭비하게 된 다는 것.
분초를 다투는 국가안보 위기 상황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이 불가능해 진다는 것.
정책 고객인 국민, 기업 등 경제 주체와의 격리로 한국의 성장 잠재력이 훼손된다는 것. 시민 단체 등 각종 전문가 집단과의 거리 차로 민생 관련 국민 의견 수렴도 어려워진다 는 것.

위의 나열된 주장들은 행정 복합 도시를 충청권으로 이전하기로 한 애초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2005년 3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뒤, 같은 달 18일 공포된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의 제정 목적과 핵심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인하여 보면 세종시 이전의 문제가 단순히 수도권의 행정기능을 단순히 충청권으로 이양하는 차원의 시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1조(목적) 이 법은 수도권의 과도한 집중에 따른 부작용을 시정하기 위하여 국가의 균형발전과 국가경쟁력의 강화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4조(국가균형발전시책의 병행추진) 국가는 전국 각 지역이 지역특성에 따라 골고루 잘 사는 국토여건을 조성하기 위하여 공공기관 지방이전, 수도권 발전대책, 낙후지역 개발, 지방분권 등 국가균형발전시책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과 병행하여 추진하여야 한다.

법안 그 자체만 다시 보더라도 세종시 문제는 국가의 백년지대계 차원이라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던 것이기에 전 국민적인 관심과 토론 속에서 여야의 심도 깊은 논의와 합의하에 통과된 국가 개조 계획이었던 것이다. 이에 비추어 수정안은 그 핵심 요지가 산업복합도시건 과학복합도시건 간에 애초의 원안의 입법 목적과 비교하여 볼 때 사실상 원안 폐기라고 할 수 있다.

수도권의 과도한 집중이라 함은 사실상 대한민국 보다 위에 있는 서울공화국의 권력과 자원 의 비정상적 편중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인구, 자동차, 정치, 행정, 금융, 상업, 정보, 통신, 교육, 문화, 보건의료, 복지, 체육 등 대부분의 물적 인적 자원과 기능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수도권의 이러한 과도한 집중은 사회적 양극화로 직결된다. 양극화로 인한 국민 간의 분열, 불만의 누적, 인적 물적 자원의 비효율적 동원과 분배야 말로 정치 민주화, 경제민주화에 역행한다. 매우 비효율적인 자원 편중은 사회전체의 의사소통과 결집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며 이는 곧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는다. 게다가 교통 체증과 사고, 비정상적인 부동산 시장, 사교육열병, 공해, 성냥갑 같은 시멘트 건물들로 가득한 스카이라인으로 상징되는 서울의 모습은 행복 지수로는 낙제점이다. 과도한 집중의 서울을 기반으로 하여 자신의 이익을 보장받고 기득권을 사수하려는 극소수의 집단이 아니라면 누가 이런 비정상적인 나라 현실에 수긍하겠는가.


반복 강조하건대 행정 수도 이전의 문제는 단순히 행정 기관 이전의 문제가 아니고, 수도권과 충청권의 정치 흥정의 주제도 아니다. 전적으로 국가와 국민 전체의 미래가 걸린 사업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9월 16일 이명박 대통령과의 단독회동에서 “행정부처 이전만으로는 자족 기능이 부족하다면 채워 줄 노력을 해야지, 다른 식으로 가려면 안 된다.” 는 의사를 밝혔다고 전해진다. 박 전 대표의 위와 같은 발언의 논리적 근거는 바로 자신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에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법안 제1조, 제4조에 대한 명료한 이해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연관된 사업 역시 방대하기도 하려니와 정책 수립과 실행 과정 역시 지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행정 기관의 이전이라는 문제 하나만 보더라도 중차대하면서도 파장 효과가 큰 국책이기에 여타 정책과의 조율, 보다 구체적인 실행안을 준비하고 집행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충분한 시간과 관련된 기관, 단체, 국민, 등 다양한 이해 주체들 간의 지속적인 연구와 소통을 필요로 할 것이다. 행정 기관의 이전을 포함한 거국적이고도 중차대한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들이 버겁거나 지난하다고 하여 결코 포기하여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준비가 덜 되었다고 한다면 더 잘 준비하는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본 법안의 취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이를 반대하는 자들이 있다면 당시 이 법 통과에 찬성한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홍보하고 설득하면 될 것이다. 특정 집단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교묘히 은폐하면서 딴죽을 걸며 반대한다면 정면 돌파해야 할 것이다.

 특정 세력의 이해 다툼에 흔들려서 실행에 회의를 느끼거나 의지가 박약해 지거나 하여 이 계획 축소 수정하려 하는 것은 법안 취지의 대의를 훼손하는 행위나 다를 바 없다. 선거에서 다수의 득표를 얻은 권력라고 하여 지난 정부 시절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까지 무시하고자 한다면 이는 과도하고도 자의적인 권력의 행사이다. 지난 정부와의 과도한 차별성 또한 편협한 정책 선택으로 귀결 될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전례가 남을 경우 대한민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백년지대계가 바뀌어야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결국 대한민국은 반짝 떴다 가라앉는 국지적인 전시경제만으로 연명하여 가다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삶의 질 전 분야에서 후진 국가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대통령부터 대의를 외면하고 말을 번복해 가면서 원안을 폐기하고 충청권에 시혜적 발상으로 국지적 사업 계획을 던져 수습하고자 한다면 어찌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라고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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