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건 一幕]중국 고대 토건 문명의 개척자 우(禹)임금
[토건 一幕]중국 고대 토건 문명의 개척자 우(禹)임금
  • 박종혁 편집주간
  • 승인 2009.11.11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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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의 고대 국가 하(夏)나라를 세운 임금 우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문명(文明)이다. 하나라는 오늘날의 황하 중류 지역의 하남성 일대. 사마천의 ‘사기’ 본기 중 하본기는 우임금을 다음과 같이 평한다.


우임금은 사람됨이 부지런하였으며, 그의 덕은 어긋남이 없었다. 그의 말은 믿을만했고, 행동은 법도에 맞았다. 명확한 사리 판단으로 정사를 처리해 모든 사람의 모범이 되었다.


우가 천자에 오르기 이전, 순임금의 명을 받들어 제후 백관과 인부를 동원하여 치산치수에 착수하였다. 광활한 구주의 토지를 개척하고. 아홉 개의 수로를 뚫었으며, 아홉 개의 택지를 만들고 아홉 개의 큰 산에 길을 통하게 했다. 그리하여 홍수로 인한 범람이 멈추고, 땅에는 곡식을 심을 수 있었으며, 각지에서 모자라거나 남아도는 물자의 운송과 교역이 가능케 하였다.


우에 대하여는 또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치산치수에 임한 13년의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자신의 집에 들어가지를 않았다. 단지 3번 집 앞을 지나간 적이 있었다. 첫 번째 지나칠 때는 자신의 부인이 마침 아들을 낳을 때의 산통으로 인한 몸부림치는 소리를 들었다. 두 번째 지나칠 때 아내의 품에 안겨 자신을 부르며 손짓하는 어린 아들을 보았다. 세 번째 지나칠 때 이제는 소년이 된 아들이 자신에게 달려와 다리에 매달렸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지나던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우는 오로지 백성을 위하여 촌음을 아끼며 때로는 현장 소장이 되어, 때로는 토목기사가 되어 살아갔다. 진흙길은 썰매를 타고 다니고, 산은 바닥에 징을 박은 신을 신고 다녔다. 항상 왼손에는 수준기와 먹줄이 쥐어져 있었으며, 오른손에는 그림쇠와 곱자를 들고 다녔다.


순임금이 세상을 떠나자 그 뒤를 이어 우임금이 천자의 자리에 올라 하나라를 열었다. 천자의 자리에 오른지 10년 후 장강을 넘어 순시 중에 우임금은 과로사로 회계(會稽: 오늘의 저장성 紹興)에서 쓰러졌다. 세상을 떠나며 그가 남긴 것은 옷 세 벌.


세간에 전직 토목 출신의 위정자가 말 바꾸기를 거듭하여 세상이 혼란스럽다. H대기업의 경우 총수의 일족들이 비자금을 조성하여 먼 미국 땅에 부동산을 매입하고, 이를 되치기로 팔아 거액의 불로소득을 챙기고 있다는 추문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한국 전쟁 이후 한국 경제의 부흥에 앞장 서 온 건설인들의 자긍심에 상처를 주는 행태들이다.


지난 50여 년 한국 경제를 짊어져 온 자랑스러운 역사를 이어가려면 건설업계에 종사하는 인사들은 문명의 개척자 우임금의 초심으로 돌아가 언행을 일치시키고 검소한 삶으로 회귀하여야 할 것이다.
그의 삶은 이름 그대로 ‘문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