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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가격의 근거 없는 삭감을 금지해야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최민수 선임연구위원
2017년 11월 02일 (목) 19:53:58 . .
   

최근 공공공사에서 공사비와 관련된 분쟁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우선 입찰 단계부터 건설공사의 예정가격이 합리적으로 산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시장의 거래가격 등을 반영하여 산출한 공사비를 발주자가 인위적으로 삭감하여 예정가격을 결정하는 관행이 여전하다.

현행 ‘국가계약법’에 의하면, 예정가격이란 발주자가 정하는 가격으로서, 낙찰금액의 상한(上限)이며, 투찰가격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예정가격은 원가계산기관에서 산출한 설계가격을 토대로 발주자가 결정하는데, 설계가격은 해당 공사의 설계도서를 토대로 재료비, 노무비, 경비 등의 항목별로 정부에서 정한 표준품셈이나 ‘원가계산준칙’에 근거하여 산출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공공기관에서는 이렇게 산출한 설계금액의 일부를 입찰 단계에서 인위적으로 공제한 후 예정가격을 설정하는 사례가 많다. 그 이유를 보면, 예산 절감이라는 목표 아래 관례적으로 설계금액에서 일정액을 감액하는 사례가 많다. 이러한 유형에는 시스템에서 무작위로 발생시킨 계수를 곱하여 설계금액을 감액하는 행위도 포함된다. 지자체의 재정 부족을 이유로 또는 일정한 사업예산을 가지고 더 많은 공사를 시행하려는 경우도 있다. 일부 발주기관에서는 추가 공사에 대비하여 추경 예산과 관련된 의회 절차를 생략하고 변경 계약이 용이하도록 설계금액을 감액하는 사례도 있다.

주요 발주기관의 실제 사례를 보면, 조달청에서는 계약 위임된 공사에 대하여 관급자재의 연간구매단가 등을 활용하여 설계가격을 삭감하는 사례가 많다. 또, 1차 수정한 금액이 수요기관의 예산보다 높으면, 또 다시 일률적으로 삭감한다. LH, 한국도로공사, 한국철도공단 등 대형 공공기관도 마찬가지이다. 설계가격을 인위적으로 감액하여 예정가격을 결정하도록 규정해 놓은 사례가 많다.

지자체 발주 공사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경쟁적으로 계약심사제도를 도입했는데, 도입 취지는 원가산정 기준이나 각종 법정 요율, 산출 물량의 적정성을 심사하여 설계가격의 정확성을 높이려는 목적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예산에 맞추어 설계가격을 삭감하는 형태로 대부분 운영되고 있다. 예를 들어 노무비 수량 축소, 주요 자재단가 삭감, 간접노무비나 일반관리비, 경비 삭감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장래의 품질에 대한 고려없이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면 좋다’라는 인식이나 관례에 기인하고 있다. 또, 가시적인 예산 절감을 홍보하는 사례로서 활용하기 위하여 혹은 발주자 예산을 초과하지 않도록 제어하려는 목적이 강하다.

그러나 예정가격은 합리적인 근거에 의거하여 정확히 산정되어야 하며, 발주자가 자의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 이유는 예정가격이란 표준적인 능력을 갖춘 건설업자가 가장 표준적인 공법으로 시공할 경우를 가정하여 산출한 공사 가격이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보더라도 정상적인 원가계산에 의하여 산출된 설계가격을 고의적으로 감액하여 예정가격을 결정했다면, 이는 도급계약의 ‘신의성실의 원칙’을 위반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또, 예정가격을 부당하게 감액하는 행위는 국가계약법령 및 회계예규를 위반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예정가격 결정 과정에서 거래실례가격 또는 지정기관이 조사·공표한 가격, 정부노임단가 등이 적용되지 않았거나, 단가산출서에 오류가 있다면, 이는 ‘청약 유인의 하자’에 해당할 수도 있다.

외국 사례를 보면, 미국 등 구미에서는 과거의 계약금액을 토대로 그동안의 물가변동을 고려하여 예정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예정가격이 낙찰 상한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또, 입찰자가 자유롭게 원가계산에 의하여 투찰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예정가격의 삭감에 따른 폐해가 적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국가계약법’에서 예정가격을 초과한 낙찰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적격심사제와 같이 낙찰률이 어느 정도 고정되어 있거나 또는 공종별 단가 심사를 통하여 발주자가 낙찰률을 제어하는 관행이 강하다. 이 상태에서 예정가격의 삭감은 곧바로 실 공사비의 저하로 이어진다. 즉, 예정가격의 인위적인 감액은 시공자에게 일방적인 손해를 강요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도 과거에는 관례적으로 설계금액에서 일정액을 감액하여 예정가격을 결정하는 사례가 많았다. 그러나 2014년 이후 국토교통성에서는 이러한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명확히 금지한 바 있다. 일본 국토교통성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예정가격이 인위적으로 삭감될 경우 덤핑 수주를 조장하고, 공공공사의 품질이나 안전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 법정 복리비의 삭감 등으로 하도급자나 근로자에 어려움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원가 산정 능력이 우수한 건설업자가 거꾸로 불이익을 받거나, 예정가격이 시세와 괴리되면서 입찰자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외국 사례를 보더라도 정부가 정한 원가계산기준에 의거하여 설계가격이 합리적으로 산정되었다면, 이를 그대로 예정가격에 반영해야 한다. 설계가격을 수정할 수 있는 범위는 원가 산정 과정에서 계산 착오나 누락, 오류, 혹은 법·제도 규정과 상이하게 산정된 항목 등으로 한정할 필요가 있다.

부언하지만, 원가계산기관에서 산출한 설계가격을 무조건 삭감하는 행위는 심각한 불공정 사례로 볼 수 있다. 정부가 이러한 행위를 방조해서는 곤란하다. 우선, 각 발주기관의 재무규칙이나 업무취급요령 등을 개정하여 설계가격의 인위적인 삭감을 강요하는 근거 규정을 시정해야 한다. 앞으로 발주자는 "그냥 싸면 좋다"라는 잔존 의식이나 관례를 개선하고, 시장가격을 정확히 반영하여 적산을 행하고, 예정가격의 적정한 설정에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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