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건설 안전, 사업 참여자 모두 협력해야 이뤄진다
[특별기고] 건설 안전, 사업 참여자 모두 협력해야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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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1.02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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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원장

지난 8월 평택 국제대교가 시공 중 붕괴되었다. 1994년과 1995년,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 이후 약 20여년 만에 발생한 대형 사고다. 한 번에 무너진 것도 아니고 일부가 무너진 상태에서 추가로 교각이 완전히 주저앉은 탓에 논란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 같은 대형 붕괴사고가 반복되어도 안일한 대처로 인해 참사가 반복되고 있다고 여론의 질타가 이어졌다. 

지난 20여 년 간 건설업계는 부실시공이 원인이며 안전불감증 아니냐 하는 국민적 지탄을 받으면서 건설현장 안전 제고를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특히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겪고 나서도 안전 수준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대처하는 방식도 달라지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진상조사를 위한 위원회를 만들고, 사고원인 제공자를 처벌한다. 그리고 사고방지 대책의 일환으로 몇 가지 규제를 강화하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대처해서는 사고의 악순환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 획기적인 인식 변화와 정책 전환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안전 확보는 불가능하다.

사고와 관련하여 ‘하인리히 법칙’이란 것이 있다. 약 100여 년 전 미국의 보험회사에서 근무하던 하인리히가 다양한 사고의 인과관계를 계량적으로 분석하여 정립한 법칙이다. 그는 산업현장에서 사망과 같은 한 번의 큰 사고는 그 사고 발생 이전에 29번의 가벼운 부상이 있었고, 그 이전에는 부상이 발생하지 않은 300번의 경미한 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사실을 토대로 하인리히는 ‘1 : 29 : 300’이라는 법칙을 정립했다.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반드시 존재함을 밝히고 있다.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 붕괴와 같은 대형사고의 원인은 매우 복합적이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잘못만이 아니다. 하인리히 법칙이 말하듯, 수백 건에 달하는 사소한 잘못과 수십 건에 달하는 다소 중대한 잘못, 그리고 몇 건의 치명적인 잘못이 겹쳐져 초대형 사고를 야기한 것이다.

평택 국제대교 붕괴 사고의 원인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고 직후부터 현재까지 국토교통부 건설사고조사위원회가 진상조사 중이지만 명확한 원인 규명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원인 규명이 그렇다면 대책도 마녀사냥식의 사후처벌과 규제 강화만으로 충분치 않다. 처벌과 규제만으로는 사고를 예방할 수 없다. 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안전에 영향을 주는 요소를 포괄적으로 고려하여 ‘안전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안전 확보를 위해서는 발주자부터 적정한 공사비와 공사기간을 책정하고 제대로 공사감독을 수행해야 한다. 설계자도 ‘안전제일’ 철학이 구현된 설계도를 작성해야 한다. 시공자는 원도급자건 하도급자건 현장의 건설근로자들이 안전하게 시공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외국에서 개발된 사고발생에 관한 모델도 한결같이 부족한 공사기간이나 공사비 책정 같은 부적절한 사업 여건이 근로자의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해 위험한 행동을 부추기고, 결국은 사고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건설 안전은 발주자-설계자-시공자-감리자 등 건설사업 참여자 모두의 협력을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협력적 안전관리체계 구축을 위해서는 안전제일 철학을 공유하고, 사업 참여자들이 적정한 역할을 효율적으로 분담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건설 안전 관련해서는 공사 현장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성수대교 사례에서 보듯 유지관리도 안전 확보를 위해 중대한 과제다. 특히 준공된 지 30년을 넘어선 노후 시설물은 언제든 사고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지자체마다 예산 부족을 이유로 노후 시설물 유지관리에는 충분한 예산투입을 못하고 있다. 노후 시설물에 대해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내지 ‘사후약방문’이 아니라 ‘선제적 투자’가 필요하다. 선제적 투자는 미래의 더 큰 사고와 손실을 방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인 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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