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F-체험수기 최우수 당선작 소개]"서른다섯,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HF-체험수기 최우수 당선작 소개]"서른다섯,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 온라인뉴스팀
  • 승인 2020.09.02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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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이코노미뉴스] 마치 제비집 같았다. 가장 높은 곳에 있었고 누구 하나 어깨를 펴지 못할 만큼 비좁았지만, 일곱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서로의 온기를 나누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80년대 말 지방 소도시에 지어진 대단지 주공아파트. 우리 일곱 식구는 그중에서도 가장 작은 평수인 13평에 살았다. 엘리베이터는 사치였다. 5층까지 하루에 기본 두세 번을 오르락내리락했다. 하지만 28년을 살면서 5층으로 가는 69개의 계단이 힘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유치원에 다닐 땐 막둥이인 내가 힘들어하면 엄마가 기꺼이 업고 올랐으며 아빠는 첫 번째 계단부터 마지막 계단을 밟을 때까지 아파트 통로를 놀이터 삼아 나와 놀아줬다.

 다섯 명의 자녀가 모두 같은 성별로 태어난 게 그나마 다행인지 방 두 칸짜리 집에서 다섯 자매가 큰 방을 같이 쓰고 작은방은 부모님이 쓰셨다. 한 사람이 간신히 서서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좁은 주방은 앞 베란다를 터서 만든 탓에 외풍이 심했고 엄마는 겨울이면 살을 도려낼 듯한 추위를 견디며 새벽부터 저녁까지 7인분의 삼시세끼를 차리고 또 치웠다.

 집은 지어진 그대로에서 성장을 멈췄는데 딸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그리고 학교를 졸업하듯 집에서도 졸업을 해 각자의 세상으로 하나 둘 떠났다. 그 집에는 유일하게 키가 작아진 두 사람만이 살고 있었고, 한 번씩 고향에 내려가면 불을 덜 켠 것 마냥 집도 생기를 잃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아팠다. 한 번도 아픈 적 없던 엄마가, 무쇠보다 강했던 엄마가, 그렇게 작은 집에서 너무나 크게 아팠다.

 올해로 일흔넷의 아빠는 백내장 수술도 하고, 귀 수술도 하고, 뇌출혈로 쓰러지신 적도 있다. 매달 한 시간 반 거리의 대학병원에 가서 정기검진을 받아야 하고 보청기와 틀니도 하신다. 그런데 아빠의 그 모든 병력과 수술을 무색하게 만든 엄마의 결정적 한 방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선천성 척추분리증과 척추 전방 전위증. 생전 처음 들어보는 그 두 단어 때문에 엄마는 배와 등을 양쪽에서 뚫고 척추뼈 세 개에 본 시멘트를 부어 철심을 고정하는 5시간의 대수술을 준비하게 되었다.

 코로나로 수술이 미뤄지면서 엄마는 거의 반 년 동안 집 앞 마트에도 마음대로 다니지 못했다. 조금만 걸어도 다리가 저려서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한 번은 방심한 틈에 고꾸라져서 다리가 부러질 뻔하기도 했다. 28년을 살아온 5층 아파트에 갇혀버린 엄마를 보면서 이렇게 집이 싫고 원망스러운 적도 없었다.

 ‘허리 수술을 하고 나면 5층까지 어떻게 오르내리나’ 걱정하는 내 속을 읽고는 이 집이 좋다며 다른 곳으로 이사 갈 생각이 없음을 강조했는데, 나는 알고 있었다. 평생 주변에 폐 끼치기 싫어 발소리, 숨소리조차 숨기는 노인들인데 수술하는 마당에 빚까지 지면서 이사를 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나는 마음과 다르게 계속 화를 내고 있었다. 퇴원하고 5층을 어떻게 올라올 거냐고, 기껏 천오백만 원을 들여서 수술한 허리 다 망가지지 않겠냐고, 그러니 고집 좀 그만 부리고 엘리베이터 있는 아파트로 이사 가자고. 하지만 대출받으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듯 신용대출이니, 카드 돌려막기니, 세상에 돈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사고를 딸들 덕분에 간접 경험해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한 번도 말썽 부린 적 없는 내가 서른다섯의 늦은 나이에 일을 저질렀다. 보금자리론 대출 가능 여부를 확인하자마자 고향에서 언니가 물색한 괜찮은 아파트로 덜렁 계약을 해버렸다. 내가 요구한 기준은 딱 두 가지, ‘엘리베이터가 있고 주방이 따뜻한 집이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2020년 봄, 엄마의 예순 아홉 번째 생신에 나는 리모델링까지 마친 새 아파트를 선물해드렸다. 빚은 없지만 모든 빚을 갚은 듯 마음이 후련했고 지금까지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었다.

 낡은 아파트처럼 희미했던 부모님의 얼굴도 밝아졌다. 그동안 집이 좁아서 사지 않던 물건들을 이것저것 고르고 꾸미면서 신혼부부처럼 즐거워했고, 마트에서 장을 본 수레를 그대로 집 현관까지 끌고 올 수 있어 편하다며 나에게 입이 마르도록 자랑을 했다. 마치 엘리베이터를 난생처음 타본 아이들처럼. 그리고 더 이상 택배 배달원들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엄마와 아빠는 반백년의 결혼생활로 구부러진 몸을 펴듯 각자의 방을 하나씩을 넓게 차지했다. 엄마는 이제 따뜻한 주방에서 더욱 따뜻한 밥상을 차릴 수 있게 되었다. 해가 뜨면 두 사람은 넓은 거실로 나와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좋아하는 TV프로그램을 보며 다정하게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다섯 명의 딸과 세 명의 사위, 여섯 명의 손주가 오면 집이 좁아 골치 아픈 대신, 어디든 함께 널브러져 부대껴 놀 수 있으니 자주 오라고 이야기한다. 집이 가족과 행복에 미치는 힘이 이렇게 크다는 걸 전에는 몰랐었다.

 물론 나는 부모님께 집을 사줄 만큼 부자는 아니다. 서울에서 작은 회사에 다니며 혼자 전세로 살고 있는 평범한 7년차 직장인이다. 서른다섯에 거주하는 집이 있고 내 명의의 집이 한 채 더 있다면 사람들은 필시 악착같이 돈을 모았을 거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보금자리론은 열심히 살아왔고 앞으로도 열심히 살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보금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희망을 빌려준다.


 나도 보금자리론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는 내가 부모님께 집을 사줄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서울 집의 전세 이자도 가볍지 않은데 내 명의로 집을 사서 대출 이자에 원금까지 갚는 상황이 쉽게 계산되지 않았다. 하지만 부모님께 집을 사드리고 보금자리론을 상환한 지 반 년째, 통장에서 돈이 나갈 때마다 내 집에 적금이 쌓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괜히 내 자신이 기특해진다.

 일반 시중은행을 통한 전월세 보증금 대출과 한국주택금융공사의 보금자리론, 두 가지 모두 이용하면서 혼자 비교하게 되는 점들이 있다. 우선 내가 매월 내는 두 가지 대출의 총 금액은 비슷하다. 하지만 보금자리론은 원리금 균등상환이라서 반은 집값으로 쌓이고 반은 이자로 나가서 저축과 같은 심리적인 안정감이 생긴다. 반면에 전세 보증금 대출은 이자만 상환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그냥 사라지는 돈이란 생각이 들어 허탈감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이자에 대한 부담감도 경중의 차이가 크다. 보금자리론을 알아보면서 가장 놀랐던 점이 고정금리였는데 대출을 신청하던 시기 시중 금리가 3%를 훨씬 웃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5년간 연 2% 초반의 고정금리라는 점이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보금자리론이 지닌 최고의 강점이 고정금리 아닐까 싶다. 전월세 보증금 대출은 지금 시중 금리에 맞춰서 금리가 많이 낮아졌음에도 보금자리론보다는 0.4% 정도가 높은 편이다. 그리고 금리가 내리기 전에는 1.3% 이상 차이가 나기도 했었다. 아무래도 금리 변동 상황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여유가 없는 사람이라면 변동금리가 지닌 부담감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보금자리론 원리금을 모두 상환하기까지 남은 기간은 15년. 하지만 나의 새로운 목표는 5년 안에 원금을 모두 중도 상환해서 이 집을 100% 완벽한 우리집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번 주말이 지나면 엄마가 한 달 간의 요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행복한 우리집, 막둥이 딸이 왔다고 엄마 아빠가 반갑게 맞아주는 우리집.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새로운 행복이 영원히 가득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