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승강기산업은 국가 안전산업이다
[특별기고] 승강기산업은 국가 안전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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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5.02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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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창석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장 -

지난해 승강기 갇힘사고가 눈에 띄게 늘었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승강기 갇힘사고로 인한 119구조대 출동건수가 2010년 대비 30% 증가한 1만2천여건이 발생했고, 피해자는 2만여명에 이른다. 이처럼 승강기 갇힘사고가 가파르게 상승한 것은 그 중요한 원인이 승강기 제조업의 붕괴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승강기 산업은 88서울올림픽을 전후로 호황을 맞았다. 이 시기에 분당지구와 같은 대규모 아파트단지와 대형건축물들이 속속 들어섰고, 이로 인해 승강기 설치대수가 급격히 증가하게 됐다. ‘90년대 초반 6만 여대에 불과했던 승강기 운영대수는 현재 45만여대로 세계 9위에 랭크돼 있다. 한해에 약 2만5천대의 승강기가 늘고 있는데, 이는 중국, 인도에 이어 세계 3위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숫자로만 보면 승강기 강국이다. 하지만 승강기 산업구조를 들여다보면 강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속이 텅 빈 공동화 상태다. 이것은 정부와 공공기관이 지난 수십 년간 승강기 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관리하지 않고 방치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에는 승강기 완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라인 자체가 없는 실정이다.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들이 한국의 승강기 기업을 상당수 인수·합병(M&A) 한 뒤, 채산성을 맞추기 위해 제조시설을 인건비가 싼 중국으로 대거 이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에 설치되는 승강기의 대다수는 중국산 부품을 조립한 것이다. 이같이 중국산 부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만큼 국내 중소형 제조업체들은 극심한 위기를 맞고 있다.

승강기 시장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국내 승강기 시장은 오티스와 티센크루프, 쉰들러 등 다국적 메이저 기업들이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승강기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현대엘리베이터도 다국적 기업인 쉰들러가 약 35%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또 국내 승강기 중소부품·제조기업의 80% 정도는 대기업 하청에 의존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중소기업들은 원청기업들의 물량조정에 따라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이 요구하는 제품단가를 맞추기 위해 일부손해를 감수하며 생산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승강기 제조부분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승강기 유지보수 기업들도 취약하긴 마찬가지다. 1997년부터 승강기 보수업 등록기준을 완화해 현재 국내에는 800여개의 관련 업체가 영업 중이다. 그러나 문제는 국내 유지보수 업체수가 선진 외국에 비해 지나치게 많다는데 있다. 가까운 일본은 승강기 70만대에 보수업체 수는 약 120개고, 미국은 85만대에 보수업체는 200개 정도다. 대조적으로 한국은 영세한 보수업체가 치열하게 경쟁하다보니 보수가 불가능할 정도의 덤핑계약이 비일비재하다. 실제로 승강기 한 대당 17만원 가량의 유지보수료를 권고하고 있지만, 3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에 계약하는 업체가 상당수다. 일부 지방에선 한 대당 1만원 정도의 가격으로 보수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같이 승강기 보수에 덤핑이 만연하다보니 불량 보수로 인한 안전사고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서 보수료를 강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 악순환이 그치지 않는 것이다.
세계 3위 시장인 한국의 승강기 산업이 왜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간략히 말하면 그동안 정부와 산업계가 승강기 산업의 육성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현재 승강기 제조업은 ‘한국표준산업분류(KSIC)’체계에 있어 산업용 트럭과 함께 ‘기타기계 및 장비제조업’군에 속해있다. 연간 약 2조5천억원인 시장규모와 사회적 중요도에 비해 독립적인 코드가 없다보니, 승강기 산업진흥은 찬밥신세이고 소외돼 왔다. 그러므로 필자는 정부의 표준산업분류에서 승강기 제조업을 독립된 제조업으로 단일 코드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앞으로 승강기 제조업을 일반 장비제조업이 아닌 특별한 안전산업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루에만 수 십 번씩 이용하는 승강기는 산업이 육성돼야 안전도 확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관계기관은 승강기 산업진흥 없이 일상적인 규제나 국민의 안전의식 계도만으로는 승강기 안전을 확보해 나가는데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주지해야 한다.

올해 행정안전부가 주최하는 ‘2012 한국승강기안전엑스포’ 개최와 승안원이 준비하고 있는 ‘중소기업 동반성장 협의체’ 구성, 경상남도가 추진하고 있는 ‘승강기R&D센터’ 건립과 ‘승강기 산업밸리’ 조성은 위기에 처한 국내 승강기 산업을 육성시킬 수 있는 소중한 아이템들이다.

승강기와 같은 안전산업은 일반 제조업과는 달리 시장이 붕괴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승강기 추락과 에스컬레이터 역주행과 같은 후진국형 안전사고, 지난해 9·15 전국 정전사태 때 시민 3천여명이 갑자기 멈춘 승강기에 갇혀 무서움에 떨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취약한 국내 승강기 산업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러므로 앞으로 승강기 제조업을 ‘한국표준산업분류(KSIC)'에서 독립코드화 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또 정부와 관계기관은 승강기 산업을 안전산업으로 규정하고 집중 육성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한국의 승강기 산업이 승강기 강국에 걸맞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빨리 정부와 공공기관 그리고 승강기 산업인들이 승강기 산업의 진흥을 위해 지혜와 힘을 모아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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