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대한건설협회 계약제도실 안성현 부장]
공공 발주기관 불공정관행 개선의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특별기고-대한건설협회 계약제도실 안성현 부장]
공공 발주기관 불공정관행 개선의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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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6.08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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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공사는 기업의 안정된 수익 확보와 경영 전략 수립에 핵심적 역할을 행한다. 그만큼 합리적인 계약여건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영역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공공공사 계약이 양 당사자의 평등한 관계를 기초로 체결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절로 고개가 저어진다. 뿌리 깊은 갑을관계로부터 형성된 계약상 불평등 구조는 공공기관의 실적평가 및 감사대상 요소인 ‘예산절감’이라는 허울 좋은 핑계로 발주기관이 다양한 부당특약을 만들어 내기에 충분한 환경을 제공하였다. 발주기관과의 관계 악화로 인한 수주기회 박탈을 우려한 업계는 낮은 공사비에도 불구하고 그 부당함에 대한 목소리를 낼 엄두는커녕 적자시공임을 알고도 부당특약 등을 감수해야만 했다.

대표적인 사례를 살펴보자. 국가·지방계약법에는 계약법령상 발주자의 요구에 따른 기존설계 변경시, 추가로 들어가는 인력, 자재, 장비에 대한 비용은 현재 물가를 기준으로 상호 협의하여 계약금액을 조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예산 미배정 등 발주기관의 책임으로 공사기간이 연장될 경우 늘어나는 공사비용을 실비의 범위 내에서 정산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공공 발주기관은 부당특약·내부지침을 마련하여 법 기준과 다르게 계약금액을 조정하거나, ‘계약기간에 휴지기간을 제외한다’는 특약을 계약서에 삽입하여 그 기간에 소요된 공사비용의 지급을 회피하는 등 시공자의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행위를 일삼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낙찰자 및 공사 계약금액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 ‘예정가격’은 ‘설계금액’을 기초로 작성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발주기관은 해당 금액의 적정성 평가 등을 이유로 설계금액에서 최대 5~6%를 삭감한 ‘기초금액’을 기준으로 예정가격을 작성하고 있다. 경쟁입찰의 기준이 되는 예정가격이 이처럼 부당하게 감액된 기준으로 책정되다 보니 여기에 낙찰률까지 적용된다면 최종 계약금액은 더욱 감액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지닌다.

그러나 최근 일고 있는 공공 발주기관 불공정관행 근절 분위기는 이처럼 묵시적으로 통용됐던 불평등 관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음을 알린다. 지난 해 5월, 공공기관장 워크샵에서 대통령이 직접 공공기관 불공정 행위의 시정을 지시한 것을 필두로, 정부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개선의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2014년 12월 18일과 2015년 1월 5일, 공정거래위원회는 ‘공공발주기관 甲의 횡포’에 대하여 사상 유례 없는 과징금 처분을 한국도로공사(이하 도공),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 한국수자원공사(이하 수공) 등 공기업에 부과하였다. 도공은 ‘공사 휴지기간 중 추가비용청구 금지조건 설정 등’을 이유로, LH는 ‘설계변경 적용단가 재조정 및 설계변경 제경비율 하향 조정을 통한 공사비 감액 등’을 이유로, 수공은 ‘턴키공사와 최저가낙찰제공사에서의 공사대금 부당 감액행위 등’을 이유로 각각 19억, 146억 10억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공공기관의 불공정관행은 결국 공사비 부당삭감이라는 형태로 귀결되기에 위 처분은 합당한 공사 대금 지불을 향한 개선의 발판을 마련한 셈이었다.

또한, 기재부와 국토부, 국민권익위, 감사원 등 정부부처는 2015년 정책과제로 ‘공공기관 불공정관행의 근절’을 내세웠고, 국토부는 가장 먼저 ‘불공정관행 개선 TF’를 출범하며, 업계로 하여금 ‘이번엔 뭔가 다르다’는 기대를 심어주기에 충분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구체적으로, 2차례 회의(‘15.3.20, 4.6)를 진행하면서 업계의 피해 사례를 취합하고 문제점을 파악했으며 개선과제를 지정한 후 4대 공기업에 그 의견을 묻는 절차를 밟았다. 또한, 국민권익위원회는 ‘이동신문고’라는 이름의 대국민 창구를 마련하고 각종 불공정 관행 해결을 위해 노력 중이며, 감사원은 관련 실태 설문조사 후 그 자료를 바탕으로 공공 발주기관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였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4대 공기업 등 공공 발주기관은 그들만의 이유를 내세워 해당 과제들이 불공정하지 않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으며, 이에 대하여 항의라도 하듯, 각 공사 현장에서는 관련 기관의 불공정 행위를 성토하는 사례가 여전히 들려오고 있다. 개선을 위한 인풋(작용)은 존재하나 그 아웃풋(결과)이 전혀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발주기관은 자신들의 책무가 무엇인가 고민해 봐야 한다. 공공공사의 핵심은 국민의 생활과 안전에 필요한 사회적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으로 공공기관은 예산절감에만 메달려서는 결코 안 된다. 더군다나 예산절감은 무조건 낮은 가격에 결과물을 조달하는 것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제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설물의 사용연한 뿐만 아니라 안전성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근자에 들어 국민의 안전에 대한 욕구가 더욱 강화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싼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니다. 정당한 비용을 지불했을 때 그에 합당한 품질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공공건설시장에서는 정당한 비용이 지불되지 않았다. 유찰 및 각종 소송전은 이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제 발주자의 인식변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발주자와 수주자라는 수직적 관계에서 벗어나, 국민이 필요로 하는 시설물을 공급하는 각각의 공사주체라는 동반자 관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발주자의 변화는 건설 결과물의 성공적인 공급뿐만 아니라 ‘상생’이라는 사회적 상승효과도 이루어 낼 수 있다. 경제민주화 및 상생은 ‘발주기관 → 원도급자 → 하도급자 → 자재·장비업자 → 건설근로자’ 등으로 이어지는 건설산업 全단계에 걸쳐서 실현되어야 하고, 이는 그 시작점에 해당하는 발주기관의 선진화로부터 출발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 건설혁신운동 등 해외선진국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경제민주화와 상생은 발주기관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결코 간과하여선 안 될 것이다.

흔히, 사람의 인생에는 3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한다.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것을 직감하고 잡을 수 있는 자가 바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현재, 건설업계에는 공공기관의 불공정 관행을 개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이는 단순히 업계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선진건설 문화 조성을 위한 제도의 뒷받침을 공약한 정부에게도, 진행하는 사업의 목적을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발주기관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회계년도의 중반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현 시점에서 반드시 이 기회에 대해 심사숙고 해 볼 필요가 있다.

건설산업은 타산업에 비해 고용창출 효과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수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산업을 망가지게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은 국익에 반하는 일임이 분명하다. 부패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현재를 부정하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공공 발주기관 불공정관행 근절 정책을 경제민주화와 상생을 향한 골든타임의 기회로 삼아, 2015년을 선진 건설문화의 초석을 다지는 한 해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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