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방기곡경에서 벗어나야
세종시, 방기곡경에서 벗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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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2.28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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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이 2009년의 사자성어로 ‘샛길과 굽은 길’이라는 뜻의 방기곡경(旁岐曲經)을 선정했다. 일을 처리함에 있어 바르고 넓은 길로 가지 않고 샛길을 억지로 간다는 의미이다. 조선의 유학자 율곡 이이가 조정에 동인과 서인의 대립이 극심할 때 "공론이 허락하지 않을 때에 방기곡경의 길을 찾아 억지로 들어가려는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하여 이 성어를 사용했던 유래가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세종시 건설문제를 보며 방기곡경을 떠올린다.
행정도시 건설이 백지화에 맞닥뜨린 가운데 시범단지의 택지를 분양받은 건설사들이 중도금을 납부할 수 없는 것은 소비자로서 당연하다. 그러나 이들 건설사들의 경우 앞으로 연체이자가 매일 쌓여가고 있다. 건설주체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사업비 손실 역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세종시 특별법은 이미 5년전 여야가 수도권 일극 체제로 인해 국가 불균형 문제가 심각하다는데 문제인식을 함께 하고 행정부 9부2처2청을 지방으로 이전하기로 통과시킨 법이다.
정부는 세종시가 자족성이 없다는 것과 정부 부처가 분리되면 행정의 비효율성이 발생한다는 두 가지 주장을 바탕으로 ‘행정도시 건설 불가’를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세종시의 본질을 왜곡하거나 크게 호도하고 있는 주장이다.
첫째, 세종시는 처음부터 자족성 신도시로 계획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수도권 과밀화가 심각하니 우선 행정기관 부터 옮기면 사람과 기업이 옮길 수 있다는 전제하에 출발한 정책이다.
충북의 국가산업단지인 오송생명과학단지를 보자. 오송단지는 1994년에 설립되었지만 갖은 혜택에도 불구하고 이전하는 기업이나 연구소가 없었다. 그러나 2001년 식약청과 질병관리본부 등 국가기관 이전이 확정되자 상황이 급반전, 158개 기업이 이주 신청을 하기 시작하여 오늘날의 위상을 이루었다. 행정기관을 옮기니 기업이 옮겼다. 세종시의 계획도 그러하다.
행정기관만 이전해서는 세종시가 유령도시가 될 뿐이라는 정부 주장도 성급한 것이다.
2008년 대전발전연구원이 정부대전청사 이전 10돌을 맞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전청사의 공무원 572명 가운데 96.5%가 현재 대전에서 거주하고 있다.
이 가운데 원래 타 지역에 거주했으나 청사 이전 후 대전시민이 된 사람이 88.3%에 이르렀으며, 또한 이들 중 65.8%는 가족 전체가 이주했다.


둘째, 정부 부처가 분리되면 행정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어 연간 2~3조원의 손실이 발생한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정책품질 저하’ 등 계량화하기 어려운 비용들을 과다하게 산정하여 부풀리기 논란에 휩싸인 것도 그렇지만 현재 수도권 과밀로 인한 교통혼잡 비용만 연간 20조원이 훌쩍 넘는다는 연구결과나, 행정도시 건설로 얻게될 민원인의 이득 등은 아예 배제하는 정부의 태도가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정부는 또 행정수도가 빈과 베를린으로 분할되어 고심이 큰 독일의 사례를 들어 행정도시 불가론에 힘을 실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본에서 베를린은 600km나 떨어진 반면 세종시에서 서울시는 120km 떨어져 있다. 본에서 베를린까지 가려면 직행기차로 4시간 30분 걸리는 반면, 서울에서 세종시는 한 시간 채 걸리지 않는다. ktx가 완전 개통되면 세종시는 더 가까워질 것이다.
정부는 지금 세종시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로 재설계하고 있다. 에너지, 바이오분야 업종으로 기업이나 연구소를 유치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줄 것이라 한다.
계획대로 세종시가 사실상 기업도시로 방향을 잡는다면 기존 과학비즈니스벨트 대상 도시로 선정된 지역들에 역차별이 될 것이며 이들의 반발을 잠재우기 쉽지 않을 것이다.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국토의 균형발전은 손바닥만한 국토에서 부비고 살아가는 우리뿐아니라 후손들에게도 시급한 현안이다.


이대로라면 방기곡경의 우(愚)가 새해에도 반복되지 않을까. 정부는 밀어붙이기를 멈추고 21세기 한국 발전 시스템의 종합적 전략이라는 관점에서 세종시를 다시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래서 샛길과 굽은 길에서 벗어나 ‘넓고 바른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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