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내가 살던 고향은...”
[특별기고]“내가 살던 고향은...”
  • 온라인뉴스팀
  • 승인 2023.08.22 15: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건축사사무소 강나루 배미선 건축사

 

[건설이코노미뉴스]필자의 어릴 적 살던 곳을 소개해 볼까 한다. 필자가 살던 고향인 해운대는 신라시대부터 온천으로 왕족의 휴양지로 이용되던 작은 어촌마을로서 역사 기록이 남아있는 곳이었으니, 일제들에 의해 물자수송을 위한 철도가 놓이고 역사(驛舍)가 생기면서 온천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에 의해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미군이 주둔하며 지역 발전이 타 지역에 비해 늦어졌고, 점차 어촌의 모습은 사라지고 온천보다는 해수욕장이 유명하게 되었으니 지금은 넓은 도로와 많은 자동차, 초고층 건물들이 그 지역의 트레이드마크가 되고 있다.

필자가 어릴 때 살던 집은 일제시대에 지어진 집이었다. 슬레이트지붕 아래 베니어 합판 천장 위로는 쥐들이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리는 본체에, 넓은 화단과 우물이 있는 마당에는 화장실과 창고가 있는 일명 구옥. 큰 대추나무가 있어 대추나무집으로 불리었었고, 집 뒤 담벼락 아래로는 작은 개울이 흘렀다. 어느 날 이 집이 포함된 도로가 개설되면서 그 개울은 복개가 되고 슬리퍼 신고 놀러가던 친구 집 앞 도로는 횡단보도를 건너야만 했다.

시간이 더 지나 친구들과 뛰어 놀다 기차 오면 도망가던 철로는 이제 공원으로 바뀌고 버스를 타던 차고지는 대형 쇼핑몰을 거쳐 높은 주상복합이 들어서 있다. 여름이면 자주 가던 냉면집도 높은 주상복합으로 바뀌었다. 하물며 작은 주택이 모여 있던 골목들도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 주말이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 되어 젠트리피케이션이 우려된다. 어느 곳을 보아도 어릴 적 살던 풍경은 전혀 찾을 수가 없다.

이 곳은 주택난이 심각했던 1990년대 인구 10만을 유입하기 위해 신시가지를 계획하여 많은 아파트를 지었고 큰 인구증가가 생긴 후로는 많은 주상복합들이 경쟁하듯 마천루로 지어졌으나 현재 인구수는 점차 감소하고 있다. 단순한 가구 수 감소에 더해 인구유출까지 생기고 있어 그 수는 해가 다르게 줄어들고 있다. 25년이 지난 이 신시가지는 노후화 되어 명칭 자체도 바꾸었으니 이제는 재건축이냐, 리모델링이냐로 논의하는 시점이 되었다.

현재 국토부에서 노후계획도시의 광역 정비를 질서있고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논의하고 있다. 특별정비구역으로 지정하여 용적률 규제는 종상향 수준으로 완화하고, 용도지역도 변경 가능하도록 하며 입지규제최소구역으로 지정 가능케 하여 노후계획도시를 고밀·복합공간으로 정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25층의 아파트들이 더 높이 솟아날 수 있다. 인구수는 줄어드는데 더 높이, 더 많이 지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높은 마천루의 뒷면은 경제력과 기술력을 보여주는 것임에 지금 줄어드는 인구수에 반비례하여 높게, 많이 지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어느새 역사성은 조각상과 안내판으로 대체되고 욕망의 표출로 얼룩져가는 도시의 모습에 시나브로 익숙해져 이상함이나 문제점을 느낄 수도 없게 되었다.

어느새 고향의 봄가사는 TVSNS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지금의 아이들이 자라 어린 시절을 되짚어보면 높은 아파트 사이 하늘과는 다른, 내가 기억하는 풍경이 어느 한 자락엔들 있을까? 특별법을 통하여 초기 신시가지들이 슬럼화 되어 기능을 상실하기 전에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우리가 여지껏 발전을 위해 뛰어왔다면 이제는 다시 되짚어 보는 시간을 거쳐야 할 것이다.

더 이상 더 높이, 더 많이가 아닌 추억과 삶이 공존하는 공간으로의 개발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