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대한설비건설협회 정해돈 회장
“분리발주 법제화 추진은 경제민주화의 ‘첫걸음’”
[특별인터뷰] 대한설비건설협회 정해돈 회장
“분리발주 법제화 추진은 경제민주화의 ‘첫걸음’”
  • 이태영 기자
  • 승인 2013.06.0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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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발주 법제화 추진은 경제민주화의 ‘첫걸음’”

수직적 갑을문화 만연…원·하도급 동등한 적정공사비 확보 필요
‘수퍼갑’ 발주기관부터 ‘깎고 보자’식 예산 집행 사라져야
건설산업 위기 불러온 ‘최저가낙찰제’는 즉시 폐지해야할 제도


최근 새 정부는 중소기업 보호를 위한 시장경제질서 확립을 위해 경제민주화를 중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건설분야에서도 그동안 뿌리깊게 자리잡은 갑·을문화를 바로잡기 위해 공공공사 분리발주 법제화라는 카드를 빼들었다. 그동안 기계설비 분리발주를 숙원사업으로 추진해온 정해돈 대한설비건설협회 회장은 “공공공사 분리발주 체제가 확립되면 현재 만연하고 있는 하도급 관련 불공정 행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갑을문화가 청산되기 위해서는 ‘제값 주고, 제값 받고, 성실히 시공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며 “이번 법제화로 인해 발주기관을 비롯해 원·하도급이 서로 신뢰하고 성심을 다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근 갑을문화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설비건설업계도 수직적인 갑을문화로 애로가 많았을 것이다. 이에 대한 회장님의 생각은.

최근 ‘라면 상무’, ‘호텔 주차시비’, ‘막말우유’ 사건이 불거지면서 갑의 횡포가 만연한 우리사회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들 사건들로 인해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을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우리사회에 갑을문화가 새롭게 정착 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또 이 기회에 수직적인 갑을문화 개선을 위해 시스템 전반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일고 있다.
이에 따라 ‘갑’과 ‘을’ 대신 ‘협력사’를 쓰거나 아예 ‘갑을’이란 단어를 쓰지 않는 곳도 있다. 그러나 용어를 고친다고 해서 수직적인 갑을문화는 바뀌지 않는다. 갑에 유리한 제도가 개선되지 않는 한 미봉책에 불과하다.
갑을문화가 만연해 있는 건설업계에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걸맞게 변화를 시도해야 할 때다. 건설업계에서 갑은 흔히 원도급인 종합건설로, 을은 하도급인 전문건설로 불린다.
그러나 원도급도 꼼짝 못하는 수퍼갑이 존재한다. 바로 발주기관이다.
갑을문화 청산을 위해서는 공공공사 발주의 최정상에 있는 발주기관을 비롯하여 종합건설사, 전문건설사가 서로 신뢰하고 성심을 다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발주기관은 제값 주고, 종합건설사는 제값을 받음은 물론 협력업체에 제대로 주고, 전문건설사는 제대로 성실히 시공하는 문화와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건설산업 위기를 불러온 주요 요인으로 최저가낙찰제도를 꼽고 있다. 이에 대한 제도개선 사항은.

최저가낙찰제는 지난 2001년 건설산업 경쟁력 강화와 공사비 절감을 위해 도입된 이래 2003년 500억원 이상, 2006년 300억원 이상 공사로 확대됐다. 정부는 2012년부터 최저가낙찰제를 또다시 확대(현행 추정가격 300억원 이상→100억원 이상)하려고 했으나 전 건설업계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시행시기를 2014년 1월로 2년 유예됐다.
최저가낙찰제 도입 후 저가수주로 인한 건설업체의 경영난 가중, 산업재해 증가, 부실시공 및 내국인 고용감소 등의 문제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더구나 경기침체로 건설업체들이 저가낙찰을 불사하면서 하도급업체는 물론 기계장비·자재업체와 건설근로자에게도 연쇄적으로 피해를 주고 있다.
원도급업체가 공사비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데 하물며 하도급업체에 적정 공사비가 내려갈 리는 만무하다. 저가로 수주한 원도급사들은 손실을 줄이고 이익을 조금이라도 남기기 위해 하도급사를 쥐어 짜고 있으며, 초저가 하도급을 유도하기 위해 수차례의 하도급 입찰을 실시하여 실행공사비에도 못미치는 가격으로 하도급을 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사의 품질이나 상생을 기대할 수 없다. 하도급업체가 적정공사비를 받으려면 먼저 원도급업체가 공사비를 제대로 받아야 한다. 그래야 낙수효과라도 있는 것이다.
건설산업의 생산주체인 원·하도급, 자재업계, 근로자 등 건설업계 종사자들은 한결같이 최저가낙찰제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건설생산주체 모두가 왜 한목소리를 내는지 귀기울여야 한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 이미 오래 전에 최저가낙찰제를 폐지하고 최고가치낙찰제로 전환한 것을 교훈으로 삼아서 최저가낙찰제도를 즉시 폐지해야 한다.
또한 실적공사비 제도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지난 2004년부터 공공 건설공사에 적용 중인 실적공사비는 공공공사의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있다. 실적 공사비로 인해 깎인 가격으로 예가가 결정되고 거기서 또 깎인 가격인 최저가로 낙찰된다. 이처럼 깎은 데 또 깎는 악순환 구조가 하루 빨리 개선되어야만 건설산업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새 정부 국정과제에 대규모공사 분리발주 법제화가 채택되어 분리발주는 건설산업계의 최대 화두가 되고 있다. 설비건설업계의 의견은.

새 정부는 경제민주화를 통한 중소기업 보호를 경제정책의 큰 틀로 세웠다. 이와 함께 건설업의 체질 개선을 위해 공공공사 분리발주 법제화를 국정과제로 채택했다. 그동안 정부는 불공정 하도급 거래 방지를 위한 장치를 마련해 왔으나 그 효과는 미미하다.
경제민주화란 갑을관계에서 을이 불평등을 덜 느끼게 하는 제도적인 배려이다. 발주기관과 원도급, 하도급 등 생산주체 간 공정한 경쟁과 분배가 이뤄지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의 수직적인 원·하도급 관계에서 벗어나 하도급이 원도급과 동등하게 적정공사비를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이 바로 경제 민주화다. 따라서 분리발주, 주계약자 공동도급이야말로 경제민주화의 첫걸음이다.
얼마 전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발표한 ‘공공공사 분리발주 법제화의 효과 및 도입방향’ 보고서에서 분리발주가 공공의 이익이 매우 큰 것으로 분석됐다. 또 일부에서 분리발주의 문제점으로 제기하고 있는 공사지연, 하자분쟁 및 효율성 저하 등은 기우에 불과하며, 철저한 공사관리와 발주자 보호장치 활용으로 해결 가능하다는 분석자료를 내놓았다.
이와 함께 발주자 선택권과 자유계약 원칙을 중요시 하는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도 분리발주의 법제화 또는 적극적인 활용을 통해 공공예산 절감, 부가가지 및 고용창출 효과를 거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통합발주의 문제점도 해결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공공사 분리발주 체제가 확립되면 실제 시공을 담당하는 전문건설업체에게 정부가 일을 직접 맡김으로써 현재 만연하고 있는 하도급 관련 불공정 행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또한 적정공사비를 확보한 전문업체는 우수 인력과 우수 자재를 사용함으로써 시공품질은 물론 전문성 강화를 통하여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기계설비공사의 분리발주 필요성에 대해 말해주신다면.

우리나라는 에너지 다소비 국가로서, 국가 총에너지의 96%를 해외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온실가스 배출량도 세계 9위에 육박한다.
기계설비공사는 건축물의 급배수·냉난방·위생뿐만 아니라 발전소의 소각·수처리 시설 등 주로 에너지의 소비와 순환을 담당하는 공종이며, 건축물 내 에너지소비의 71%, 금액 환산 시 연간 약 260억 달러가 기계설비에서 소비되고 있다. 따라서 건설분야의 녹색성장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서는 기계설비의 기술발전이 필수적이다.
기계설비는 학술적 관점에서 보면 열공학·유체공학·제어공학 등과 연계되어 있고 토목·건축과는 다른 카테고리에 놓여 있어 각 대학에서도 기계공학도를 별도로 양성하고 있다.
또한 실제 건설공사에서도 설계도서가 분리되어 있어 하자책임 구분이나 공정관리에 지장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공사 원가산정의 기준이 되는 표준품셈도 독립되어 작성한다.
기계설비는 독일·일본·미국 등 건설 강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분리발주하기에 가장 적합한 공종이다.
전기설비나 통신설비의 경우 특별법에 의해 분리발주가 의무화됨으로써 저가하도급에 따른 부실시공과 적자경영 위험에서 벗어나 매우 전문화되어 있다. 또한 소방설비 공사도 소방산업의 발전을 위해 분리발주 의무화 법안이 국회 입법 발의되어 심의 중에 있다.
그러나 동일한 설비계열 공사임에도 불구하고 기계설비는 제도적 미비로 시공의 전문성이 없는 종합건설사에 통합발주된 후 다시 100% 하도급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하도급 체계에 갇힌 기계설비산업은 전문성을 제고할 방법이 없다.
기계설비의 전문성과 기술력 강화는 물론 저탄소 녹색성장을 위한 국가적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전기설비나 통신설비처럼, 기계설비도 분리발주 법제화가 조속히 시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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