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경제에는 녹색철학이 필요하다
녹색경제에는 녹색철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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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1.1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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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정책연구원 이종광 연구위원

지난 해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대공황 이후 최대라는 평가에 걸맞은 충격을 주었지만, 갈색경제(Brown Econo my)의 한계를 인식하고 녹색경제(Gre en Economy)로 이행하는 분기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기후변화와 자원고갈을 유발하는 탄소기반의 경제는 성장은 고사하고 인류의 생존조건마저 붕괴시킬 것이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고 후속세대의 생존을 담보할 수 있는 녹색경제로의 패러다임 변환이 불가피하다는 공감대가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녹색바람이 불고 있다.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국가비전으로 천명했고, 기업들도 녹색기업으로의 변신을 서두르고 있다. 녹색뉴딜, 녹색일자리 등 녹색과 결합된 조어도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녹색경제를 경제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또는 일시적인 유행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우려스럽다. 정부와 기업들이 벌이고 있는 녹색패션쇼 중에는 모델들이 급하게 녹색으로 염색한 옷을 입고 나온 테가 나는 경우도 있다. 바탕인 ‘녹색’보다는 ‘성장’과 ‘개발’이라는 무늬에 방점에 찍혀있고, 여전히 성장률에 대한 기여, 경제적 효율성, 고용의 양 등 전통적인 기준이 평가표를 채우고 있다.

녹색성장이 우리의 지향점이라는 것이 분명해진 이상, 녹색경제에 대한 철학적 인식을 강화하고 사회적 기반을 확대하는데 힘써야 한다. 서구에서는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나 ‘로마클럽 보고서’를 통하여 성장의 한계가 지적된 1960-70년대부터 환경위기와 에너지위기에 대한 지속적인 성찰이 있어 왔다.

이제는 공공과 시민사회 전반의 내면화 수준도 높아져 있다. 그러나 당시 민주주의를 희생하면서까지 산업화와 경제성장에 몰두해야 했던 우리에게 - 이후 녹색지향에 대한 간헐적인 논의가 있었지만 - 녹색경제는 다소 생경한 면이 있다.

유사한 상황은 실천적인 측면에서도 나타난다. 녹색경제를 구현하는 녹색기술의 개발과 투자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독일, 영국 등 녹색선진국과 제법 먼 거리에 떨어져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가 녹색경제의 선진국이 된 것처럼 혼동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이번 경제위기를 잘 관리한 국가 중의 하나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성과가 모두 녹색정책의 결과로서 나타난 것은 아니며 오히려 건설투자 등 전통적 수단에 의존한 바가 더 크다. 우리나라는 이제야 녹색경제의 출발선에 섰다는 것이 더 정확한 상황인식일 것이다.

녹색경제 패러다임에 대한 철학적 인식의 토대가 부실하면, 화려한 비전도 허상이 되기 십상이며, 변화의 추동력도 쉬이 소실된다. 정부와 기업과 시민사회 모두의 각성이 필요하다. 그에 따라 정부와 기업은 녹색경제에 부합하는 정책과 상품을 내놓고, 시민사회도 생활과 소비에 녹색철학이 깃들이도록 해야 한다. 지금 부는 녹색바람이 큰 구름을 몰아와서 우리강산과 사회 구석구석을 적셔주는 녹색비를 뿌려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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